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남자아이들은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로 들어간다. 그 공간의 독백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게임을 찾는다. 게임은 언제나 피드백시스템으로 움직인다.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이 거기서는 가능하고, 기술만 연마하면 인정받는다. …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 누군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투사로, 혁명가로 정체성을 쥐어주자 '시민저항권'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이제 현실이 게임이 되었다.
서부지법을 습격한 청년들의 얼굴에서, 내가 10년 전 멘토링했던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도 너무 많은 아이들이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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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애통
Lamenting · 무감각에 맞서
외로움 · 청년실업 · 은둔청년 · 교육 격차 · 부트캠프 1–3주 문제정의
애통 · 나의 진심명제
NAIOTH
같은 다섯 칸으로 쓴 나의 문제
당사자 · 현장 · 사건 · 고통 · 비전 E 비우고 라이브로 받아 적기
01 당사자
피드백시스템에 갇힌 초등 남자아이. 복학 후 어울리지 못해 다시 게임으로 돌아간 청년. 은둔·고립청년. 가난하게 태어나 꿈을 포기한 아이. 매일 태극기 집회에 가는 퇴역 장군.
02 현장
초등 교실과 멘토링 현장. PC방과 온라인 커뮤니티. 복학한 대학 강의실 뒷자리. 그리고 2025년 1월, 서부지법 앞.
03 사건
10년 외로웠던 소년들에게 누군가 '투사', '애국자'라는 이름을 쥐어주었다. 그들은 법원을 습격했고, 사회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다시 고립시켰다.
04 고통 ★
외로움. 공론장에서 자기 이름으로 말하고 피드백 받아본 적이 없는 것. 인정욕구가 소비와 혐오와 폭력으로만 해소되는 것. 아렌트: 전체주의는 외로움에서 온다.
05 비전 ★
초등학교부터 공론장에 나와 자기 의견을 말하고 그 반응을 받아보는 경험.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장에서의 연대.
애통 · 마비는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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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비되어 있었다
브루그만: 왕의 의식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숫자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청년실업률, 은둔청년 규모, 교육 격차 지표 — 나도 오래 이 숫자들만 보았다. 통계 속 집단에는 얼굴이 없어서 애통이 생기지 않는다. 멘토링 현장에서 한 아이의 10년을 따라가고서야 보였다.
세대논쟁으로 치부했던 나
'2030은 원래 그래'라고 넘기던 나. 저녁 6시 지하철에서 땀냄새에 코를 막던 나.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발뺌하는 본능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분노가 아니라 애통
서부지법을 습격한 청년도 완전한 악역이 아니다. 도화선을 놓은 사람을 미워하면 나 역시 갈라치기에 가담하는 것이다. 완전한 선의의 피해자도 완전한 악역도 없다. 애통은 함께 우는 것이고, 그 다음에야 비판이 정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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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비판
Criticizing · 타협에 맞서
내 가정이 어디서 깨졌나 · 부트캠프 4–6주 현장탐사
비판 · 내 가정이 깨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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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바꿀 수 있다' — 세 번 깨졌다
제도 → 정책 → 도메인, 그리고 아직 열려 있는 칸
가정 ①
제도를 알면 바뀐다
한림국제대학원 · 정치제도 '제도의 상보성'을 배웠다
→ 졸업 후 허탈. 제도를 안다고 무엇이 바뀌는가?
가정 ②
정책을 알면 바뀐다
연세 행정대학원 · 공공정책 정책 6단계를 다 배웠다
→ 제도의 성육신이 정책이었지만, 출발점이 없었다
가정 ③
도메인을 잡으면 바뀐다
와글 TF · 17개 지자체 플랫폼 전자정부 → 고려대 STS 박사
→ 담론은 넘치는데 작동하지 않는다
가정 ④
?
국정전문대학원 · 거버넌스 핀란드–한국 비교 연구 중
→ 지금도 막혀 있는 자리 (비전에서)
비판 · 구조를 있는 그대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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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가 아니라 질(質)
같은 나라가 가진 세 개의 숫자 (2022)
0
UN 전자정부 평가
0
OECD 행복지수 (38개국)
0
세계 거버넌스 지표 WGI
비판의 대상은 공무원도 기업도 아니다. '숫자가 좋으면 괜찮다'고 믿게 만드는 구조다. 완전한 악역은 없다.
핀란드는 1–2위, 셋 다
기술이 아니라 시민이 정부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한국은 '3위'를 자랑한다. 예언자적 비판은 묻는다 —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한가?
여기서 내 도메인이 정해졌다. 전자정부를 매개로 정치를 바꾸겠다고.
비판 ·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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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만한 사람은 사실 나였다
「오만과 지혜로움 사이」 · 2026.5
누군가를 비판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내포한다. 그 오만한 사람은 사실 나였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 역시도 나일 수 있겠다.
두 시간 뒤, 배달노동 캔버스에서 빈칸을 만날 때 — 그것이 비판의 시작입니다.
비판이 타협이 되지 않으려면
내 문제의식이 원한(르상티망)인지 애통인지 묻는다
내 가정과 어긋나는 자료를 먼저 찾는다
모르는 칸을 지어내지 않고 비워둔다 — 오늘 오후 캔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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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활성화
Energizing · 냉소에 맞서
막힌 다음 무엇을 했나 · 부트캠프 7–9주 지식생산
활성화 · 새 언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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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 유토피아 Provisional Utopia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 스웨덴 복지국가의 설계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 — 잠정적 유토피아는 한 번 세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어야 하는 '작업가설'이다.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과, 100년 뒤의 공동체를 향한 비전을 동시에 쥔다.— 비그포르스,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
데이터를 '통제의 수단'에서 '호혜의 자원'으로 — 「피지털커먼즈와 온톨로지가 만난다면」 2025.10
기존 정부
미래정부 (피지털 폴리스)
정부의 자리
데이터를 통제하는 감시자
→ 커먼즈 증진자 — 시민의 소유권·통제권 보장
문제 해결
모든 문제를 푸는 중앙 통제자
→ 메타거버넌스 조정자 — 시민 조직을 조율하는 지휘자
행정의 시점
민원이 들어온 뒤 대응
→ 민원 전에 정서적·물리적 니즈를 예측
시민의 자리
서비스의 수혜자
→ 자원과 지식을 공유하는 공동생산자
데이터
통제의 수단 · 사유화
→ 호혜의 자원 · 투명한 계보 · 시민이 규칙을 결정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 정부의 모든 데이터를 커먼즈의 관점에서 다시 설계하는 '국가 온톨로지', 그리고 시민이 규칙을 정하는 '커먼즈 거버넌스 위원회'
비전 · 나의 소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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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세상
파토스 커먼즈 — 고통의 감각이 공통의 감각이 되는 곳
파토스 커먼즈는 시민 다중이 현실 사회 안에서 상호 교감을 이룬 고통의 감각을 확장하는 커머닝의 행위다. 개인보다 사회적 교감을 무형 자원으로 보존하면서, 현세대와 함께 '공통 감각'을 어떻게 유지하고 지속할 것인가를 다룬다. — 외로움에 갇힌 소년이 누군가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커머너가 되는 것. 그것이 내 비전의 첫 장면이다.
단기 (~2030)
초등학교부터 독서와 공론장 — 아이들이 자기 이름으로 말하고 피드백 받는 '로고스 커먼즈'의 첫 경험. 광명시 청년숙의예산 같은 공동생산 실험을 10개 도시로.
중기 (~2040)
시민이 정책실험을 직접 설계하는 플랫폼의 제도화. 데이터는 통제의 수단에서 호혜의 자원으로 — 정부는 감시자가 아니라 커먼즈 증진자.
장기 (~2050)
노동이 없어도 존엄이 유지되는 체계. 피드백시스템에 갇혔던 소년이 공통장에서 커머너로 서는 것이 당연한 사회. 정치·경제·복지 레짐의 상보성이 완성된 미래정부.
비전 · 내 연구의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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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최적표준 × 내 연구 — 채운 칸과 빈 칸
빈 칸을 클릭하면 이유가 열립니다
비전 · 지금도 막혀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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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풀리지 않은 세 가지
다 해결한 사람이 아니라, 같이 걷는 사람으로
연구에서
한국에서 왜 매개가 작동하지 않는가 — 아직 답이 없다. 시민의 역량은 있는데 제도가 '실험'을 받아주지 않는 이유를 찾는 중이다. 핀란드도 2019년 이후 실험 문화가 '조직의 표층'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장에서
초등학교부터 독서와 공론장 경험을 만드는 것이 내 대안이었다. 그런데 내 프로그램이 닿는 아이는 한 해 수십 명이고,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다시 게임으로 돌아간다. 한 아이의 10년을 바꾸는 데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아직 모른다.
나 자신에서
여전히 겁쟁이다. 사람들이 집중하면 잘 못한다. 오만과 지혜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가면을 쓰고 있다는 불안이 기본값이다. 그래서 이 글들을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남긴다.
비전 · 다음 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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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의지다
「44-1」 · 2026.8.9
누구나 거대한 구조 앞에서 겁쟁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그렇게 겁쟁이로 만드는 것은 반대한다. 우리가 못하면 다음 세대가 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안 되더라도 해보는 사람'이라는 의지의 계승자다. 지식은 그 시대에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44살의 신념, 그리고 커먼즈
기회주의자는 이기주의자를 만나면 이기주의자가 된다. 이타주의자를 열 번은 만나야 이타주의자가 된다 — 그래서 공유지는 유지된다
도움을 필요로 하면 의도를 묻지 않고 돕는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본다. 판단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은 반드시 있다
태도가 전부다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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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다섯 문제는 같은 문법을 쓴다
그리고 내 문제도 5 진심명제 라이브 입력으로
아무도 책임 주체가 아닌 것
농촌 생활서비스의 행정–운영–주민 단절
제도는 있는데 닿지 못하는 것
분만취약지의 모자의료 접근성
매일 보는데 안 보이는 것
은둔·고립청년의 사회진출
개인 탓으로 돌려지는 것
가난하게 태어난 아이가 꿈을 포기하는 이유 · 은둔청년 — 그리고 내 문제(외로움)
좋은 이름 아래 벌어지는 것
탄소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태워지는 숲
오전에 말씀하신 그 장면 — 다섯 칸 중 어디가 비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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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선의의 피해자도, 완전한 악역도 없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캔버스에서 막히실 때 —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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